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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실크로드경영학][2부] ⑧세계의 중심, 동양의 자부심, 시안(西安)
  •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
  • 승인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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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김정웅의 실크로드 경영학' 1부는 실크로드를 오가며 활약한 '소그드 상인'의 주 무대인 우즈베키스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봤습니다. 2부는 실크로드의 시작점인 시안과 인근 지역을 탐방하고, 그 역사성과 현재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경영인의 관점에서 풀어갑니다.

지난해 10월 중순, 전쟁사 전문가이자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임용한 박사와 함께 중국의 고도(古都) 시안(西安)과 명산 화산(華山)을 3박4일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실크로드 기행’의 두번째 목적지인 시안은 중국 고대 역사의 보고(寶庫)로, 해마다 수백기의 고대 무덤이 발견된다. 동양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이자 고고학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수교하기 전 '중공(中共)'시절에 역사교육을 받은 나같은 사람들은 시안이라는 현대식 명칭보다는 장안(長安)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편안하게 들린다. 필자는 경기도 파주 출신이다. 1972년 초등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서울로 소풍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았던 삼일빌딩과 남산의 어린이 회관을 보고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세련미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아마 1500년전 신라 청년 최치원이 장안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받은 인상이 내가 처음 서울에 와보고 받은 충격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한국이 좀 잘살게 되어 중국을 "11억 거지떼" (사실은 15억)라고 욕한 국회의원도 있지만, 초등학교 때 필자가 읽었던 서유기, 삼국지, 초한지에서 고대 장안과 낙양은 ‘20세기의 뉴욕’에 비견될만한 세련된 선진 도시의 느낌이었다.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인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라는 말은 시안의 옛이름 장안과 깊은 연관이 있다. 모화사상(慕華思想)에 젖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서울과 장안을 같은 의미로 쓰면서 ‘서울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라는 표현에서 서울을 빼고 장안만 쓴 것인데, 조선양반들의 중국에 대한 환타지가 잘 반영됐다. 김세레나의 성주풀이 노래가사에 “낙양성 십리하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 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라는 가사도 오랜 세월 우리 문화 속에 자리잡은 중국 판타지의 발로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중국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것은 5000년 역사 중 최근 50년에 불과하다. 2017년 오늘, 'G2'로 부상한 중국이라는 나라는 필자에게도 큰 도전과 기회이자 부담으로 다가온다. 독자들이 이 역사 기행을 통해 중국을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세계의 중심, 동양의 자부심, 시안

시안의 하늘은 뿌옇다. 삼성반도체 시안사업장에 파견 나간 한국 반도체 엔지니어가 한달 동안 회사를 오가다가 어느 맑은 날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산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중국 산시성 시안. 뿌연 대기 때문에 먼 곳은 보이지 않는다.

대기오염 때문에 공기가 좋지 않아서 하늘이 뿌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관중분지(關中盆地)의 중앙부에 위치해있고, 바람의 불지 않아 고대에도 대기가 흐렸다고 한다.

오늘날의 시안은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시가지의 모습도 매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지금은 지하철 라인이 2개지만 내년에는 7개 라인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한국 교민은 4·5년전에는 500명에 불과했는데 삼성반도체 시안공장 준공 이후부터 급격히 늘어 지금은 5000명이 넘는다.

시안 일대에는 주나라와 춘추천국시대를 비롯, 진나라 진시황, 한나라 유방, 흉노의 왕들까지 황제의 무덤만 132기가 존재한다. 제갈량, 사마천 등 쟁쟁한 역사적 인물들의 무덤도 수없이 널려 있다. 또 매년 수백기의 고대무덤이 발견된다. 이런 동양문명의 보고를 이렇게 용감하게 개발해도 괜찮을까 의문이 생긴다. 미래 중국의 후손들은 오늘날 중국의 과감한 시안 도시 개발을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필자가 시안을 찾은 이유는 지리적 위치와 역사성 때문이다. 장안(현 시안)은 전한(前漢), 수(隋), 당(唐) 등 중국 13개 왕조의 수도였다. 옛 주(周)나라의 수도 서기(西岐)가 이 부근에 있었고, 진나라의 수도 함양은 바로 강 건너에 위치한다.

시안은 중국의 중심이자 서방으로 가는 길목이다.

기원전 100년경에 살았던 사마천은 ‘사기’에서 “관중이 천하의 3분의 1이고 인구는 10분의 3, 부는 10분의 6”이라고 했다. 이 지역은 주나라부터 당나라 시절까지 고대 중국의 경제 중심지였으며, 로마까지 이어지는 고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다.

중국 고사에 “관중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關中者得天下)”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고대사의 핵심 지역이었다. 진나라 진시황과 한나라 유방은 이 장안이 포함된 관중 일대를 기반으로 천하를 얻었다.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의 전진(前秦)과 남북조시대의 북주(北周), 수, 당 역시 이 지역을 기반으로 화베이(華北, 화북)을 통일한 바 있다. 진시황, 수 양제, 당 태종, 양귀비 등 중국 고대사의 쟁쟁한 주인공들이 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했으며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이 지역 함양을 두고 쟁패했다. 서유기 삼장법사의 모델인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불경을 장안으로 가져와 당 태종이 세워 준 대안탑에서 불교를 전파했다.

20세기가 ‘아메리칸 드림’ 시대였다면 7세기는 ‘당나라의 꿈 (Tang Dream)’ 시대였다. 장안은 바그다드와 더불어 인구 100만명을 자랑하는 당대 세계 최대 국제도시였다. 한반도와 발해, 일본에서 출세를 꿈꾸는 유학생들과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겠다고 찾아온 구법승들, 돌궐·위구르의 용맹한 무사들, 인도, 페르시아, 아랍, 소그드의 장사꾼들과 벤처기업가들, 각국의 외교 사절단, 부나비같이 꼬여 드는 절세의 각국 미녀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외치는 ‘중국의 꿈(中國夢)'의 뿌리가 바로 당나라의 전성기, 성당(盛唐)의 재현이다.

장안은 한반도와도 인연이 깊은 땅이다. 서기 648년 신라 사신 김춘추가 고구려 침공에 실패한 후 중풍이 걸려 입이 돌아가고 반신 불구가 된 당태종 이세민을 찾아가 "백제를 먼저 치고 고구려를 나중에 치자"고 제안하며 삼국통일의 초석을 놓은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보장왕과 백제 의자왕이 끌려와 망국의 회한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한 곳이며 최치원과 같은 신라·발해의 유학생, 의상스님 등 구법승 등 고대 한반도의 엘리트들이 당의 선진문물과 불교를 배우러 장안으로 향했다. 희강년 2년(837) 당의 국학에서만 공부하고 있던 신라 유학생의 수가 216명이고, 최치원처럼 과거에 합격해 관리로 등용된 신라인만 5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8·9세기 이름이 확인된 신라 구법승의 숫자는 80여 명에 이르렀다. 이 숫자들은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새로운 지식을 찾아,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이곳 장안으로 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 bruce@surplusglobal.com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  bruce@surplusglob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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