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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실크로드 경영학] <10>세계 제국 당나라의 재현을 꿈꾸는 중국
  •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
  • 승인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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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로마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장안(長安)이 있었다.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장안은 세계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와 일본의 유학생과 승려, 중앙아시아의 소그드 상인, 뿐만아니라 인도, 페르시아, 아랍 상인과 사절단, 심지어는 흑인까지 장안으로 몰려들었다. “장안의 풀로 태어나는 것이 변방의 꽃보다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7세기 쇠망한 로마가 인구 10만일 때 장안은 100만의 인구를 가진 당대 최대의 도시였을 뿐 아니라 빛나는 문명의 중심이었다.

백제의 멸망 660년, 고구려의 멸망 668년 사이를 그린 당 지도. 백제, 고구려의 흔적이 없고 신라의 흔적만 조그맣게 남아있다. (자료=위키피디아)

세계제국 수(隋)·당(唐)의 수도 장안은 다양한 문화갈래를 묶어 화려한 봄으로 피어났다. 오호족(五胡族)의 북중국 침입이후 중국대륙의 남과 북에서 각각 성장해온 무수한 문화 갈래를 절충한 게 당의 문화다.

당나라는 글로벌리즘이 꽃핀 나라로 호한융합(胡漢融合)의 기치 아래 세계 각국의 인재를 차별하지 않고 핵심 포지션에 적극적으로 등용하였다. 특히 당 고조 이연은 딸이 19명이었는데, 그 중 절반이 이민족들과 결혼했다고 한다. 이렇게 국제적이고 개방된 정신으로 세계 문명을 주도했던 당나라로 최신 불교교리, 법과 제도, 학문을 배우려고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최신 건축 양식이나 헤어스타일, 패션을 보려면 바로 이 곳 장안으로 가야 했다.

장안을 중심으로 한 실크로드 무역은 1세기부터 11세기까지 유라시아 전역의 도시·문명 사이 네트워크를 더욱 강화시켰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이집트간 새로운 사상과 문물이 활발하게 교류되었고 이는 동서양 양쪽에 모두 새로운 시대를 열어줬다.

당시 장안은 계획도시로서 5m 높이의 담으로 둘러 싸여있었다. 동서와 남북의 거리는 각각 10Km·9.5 Km였고, 황성 앞 주작대로 폭은 150m였다. 장안성은 108개의 방(坊)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 중 80여 방에는 중앙에 교차하는 십자로가 있고 그 끝 동서남북에 문이 있어 통금 시간이 되면 닫아 걸었다고 한다. 그 중 평강방(平康坊)이라는 곳은 기생집이 많아 관리들과 시인, 공자들의 출입이 잦았다고 한다. 나이 든 기녀가 가모(假母)가 되어 젊은 기녀들을 거느리고 있고, 놀고 먹으며 기녀들에게 빌붙어 사는 묘객(廟客), 은밀히 여자를 사냥하여 기적(妓籍)에 넣고 감시하는 여쾌(女儈)라고 하는 인신매매꾼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백은 백석벽안(白晳碧眼: 흰살결 푸른눈)의 호희들과 어울려 포도주를 마시는 기분을 자주 노래했다.

장안에 모란꽃이 피는 시기는 3월 15일을 기점으로 전후 20일간이다. 일본 작가 이시다 미키노스케가 1941년에 쓴 '장안의 봄(長安之春)'에 나오는 구절들에 따르면 "꽃이 피고 지는 20일 동안 온 성의 사람들은 모두 미친 듯"했으며 "도성의 대로마다 꽃피는 시절, 만 마리 말과 천 대 수레가 모란을 보러 갔다"고 한다. "꽃필 무렵이면 경성이 들썩인다"고 했으며 "장안에 모란이 피면, 비단수레 구르는 소리 마른천둥이 치는 듯"하다고 노래했다. 도성의 거리마다 "모란이 필 때면 육가(六街)의 먼지"도 향기를 띠었다. 여러 꽃을 보았지만, 이 꽃보다 아름다운 건 없다"고 상찬 했다. 당나라 장군 혼감은 댕대의 유명시인들을 초대해 자신이 가진 모란의 아름다움을 읊게 했고, 이 자리에서 백거이는 "모란을 가지는 것은 장안에서 가장 고위한 향기와 색을 소유하는것"에 비견하였다.

유혼(柳渾)은 "오늘날 모란꽃은 어찌할 수가 없구나. 수십 수천 전을 내고 한 송이를 사다니"라 탄식했고, "이것을 심어 이익을 보려 하니, 한 그루에 수만 전씩 하는 것도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대 특급 모란의 엄청난 가격은 17세기 네델란드의 튤립 파동을 연상케 한다. 실제 당대의 시인들은 "모란꽃 탓에 장안의 10만 가구가 파산했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당 태종 이세민이 천하를 통일하고 ‘정관의 치’라는 번영의 시기가 열리자 장안의 부자들은 그들의 정원을 장식할 아름다운 모란꽃에 빠져들었다. 장안에서는 매년 늦은 봄 화려한 모란꽃 경연대회가 열렸고 1등을 받은 모란의 가격은 집 한 채 가격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 시대의 유행풍조는 쉽사리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장안의 사녀(미인)들은 봄날 꽃쌈(鬪花)을 할 때 특이한 꽃을 머리에 꽂고 뽐냈는데, "모두들 천금을 들여 아름다운 꽃을 사다가 정원에 심고서 봄날 꽃쌈에 대비했다"고 하니, 이 경합에는 틀림없이 명품 모란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장안에는 두 개의 큰 시장이 있었는데, 내국인들을 위한 동시(東市)와 국제시장인 서시(西市)가 있었다. 특히 서시는 지금의 회족거리에 있었는데 실크로드를 통해 온갓 진기한 물건들이 모이는 세계 최대 시장이었다. 세계 50개국 이상에서 온 물건들이 팔렸다. 수많은 상점에서 견직물, 진주, 보석, 향료, 유리 등 각종 물건들을 팔았다 한다.

신라 상인들은 백거이의 시문이 나올 때마다 백금을 아끼지 않고 남김없이 사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아마 서시에서 백거이의 시문을 사갔을 것이다. 서유기 삼장법사의 모델인 현장법사가 인도로 불전을 구하러 갈때 이 곳 서시에서 필요한 물건과 사람을 준비해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당시 서역과의 교역에는 호인(胡人), 즉 소그드 상인들의 역할이 컸다. 시장통에는 호텔과 술집이 즐비했는데, 호희(胡姬)라고 불렸던 푸른 눈의 페르시아계 여성들은 이국적인 춤으로 큰 인기를 끌어 서시 술집의 꽃으로 불렸다. 당대의 스타 이백은 푸른 눈에 곱슬머리, 하얀 피부를 가진 호희들과 포도주를 마시는 기분을 즐겨 노래했다.

이렇게 장안은 외면적으로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도시로 보이지만, 그 뒷면에는 숨막히는 속박과 통제가 있었다. 장안 시가의 모형도를 보면서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황제들이 가축을 우리에 가두어 키우는 것처럼 사람들을 가두려고 장안을 설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장안 사람들은 바둑판 모양의 108개 방 중 한 곳에 계급이나 민족별로 몰려 거주했고, 각각의 방에서 가축처럼 갇혀 살았다. 5미터 높이의 방벽 안에서 황제가 치는 북소리, 종소리에 맞춰 일상생활을 영위했다. 이를 어기면 처절한 형벌이 따랐다.

시인 이백, 백거이가 화려한 장안의 봄을 노래한 건 지배층의 철저하게 계산 속에 풀어 준 작은 자유가 아니었을까?

수나라 시대 장안 지도. 바둑판 모양 방(坊) 형태는 당의 108방으로 이어졌다. (자료=몽키트리)

당나라가 번성하기 전 유목민의 남하로 인해 135년간 5호16국 시대의 혼란이 있었다. 탁발선비(拓跋鲜卑)가 창업한 북위(北魏)와 수·당은 이전 몇 백 년간 이어진 호한 반목·갈등·투쟁 끝에 타협해 호한융합이라는 비전으로 유목민과 농경민을 통합했다. 진한에 이어 중국을 재통일하고 고구려, 백제, 돌궐, 토번을 멸망시켰다.

호한융합으로 탄생한 대(大)당제국은 유라시아의 세계 제국이었다. 다양한 민족과 국가가 서로 교류하고 공존하는 개방적 국제주의를 실현, 장안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특히 당태종은 이민족에 대한 우대정책을 실시해 국방과 정치적 안정을 꾀했다. 이민족과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맺어 수많은 이민족이 중국에 들어와 거주하며 대당제국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포용력을 발휘한 덕분에 대당제국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태종을 한인(漢人)들의 천자(天子)이자 호인들의 '가한(칸)'이라는 의미에서 '천가한'이라고 칭했다.

한족의 땅 중국은 최치원, 고선지, 장보고와 같은 외국인 인재들이 몰려드어 전례없는 창조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당은 모든 문물을 수용하는 열린 제국, 번성한 제국을 지향했기 때문에 군사·정치적으로 쇠락했어도 오랜 기간 존속할 수 있었다. 대당제국의 돈줄은 사실 외국 상인, 장안의 서역상인, 동남해안의 아라비아 상인, 동북해안의 신라상인이 장악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에 가장 극적으로 대중 관계가 변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일제시대 중국은 항일투쟁의 동지였으나 한국전쟁 때는 중공과 총칼을 들이대고 피 튀기게 싸웠다. 냉전시대 미국의 종속국 역할로 반공의 최전선에서 중공과 대치하며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 이제는 중국 덕분에 먹고 살고 있다. '용공', '종북'으로 진보세력을 몰아붙이는 극단적 보수주의자도 중국 공산당과 일하는 한국의 기업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난을 하지 않는다.

중국의 기업인들은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철강, 화학, 조선, 자동차 등 전 산업분야에서 중국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한국을 따라잡았고, 추월하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는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면서 연간 1조달러를 거져 벌어들이고, 7000억 달러의 군사비를 쓰면서 세계를 지배한다. 중국은 매년 5000억 달러의 무역흑자로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그 돈으로 중국기업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해서 자국기업들을 키운다.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는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중국에 가져다 팔 물건은 줄어들고 중국에서 사올만한 물건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년간 중국은 전세계 가전,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업계를 평정했고, 지금은 LCD업계를 장악해나가고 있다. 중국정부의 엄청난 보조금은 한·미·일·대만 등의 태양광, LED, LED, 가전 산업을 초토화시켰지만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다.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는 화웨이, 하이얼, 메이디, SMIC와 경쟁하는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중국정부와 경쟁하는것이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반도체 업계에서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세계적인 화두이다. 세계 각국의 반도체 컨퍼런스에 가보면 중국은 이미 핵심 아젠다 중 하나다. 향후 10~20년에 걸쳐 전세계 반도체 산업에 큰 파도가 몰려올 것이다. 중국은 국가안보차원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반도체 산업을 강력하게 육성할 것이다.

오바마, 트럼프는 미국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려는 중국에 대해 노골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이 힘들어진 중국은 몇 배씩 월급을 주면서 한국·일본·대만의 반도체 엔지니어들을 빼가고 있다. 중국에 대해 유일하게 확고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반도체 메모리 산업이 수백조의 나랏돈을 때려박는 중국에 대해 언제까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한반도의 국가들은 중국의 통일 왕조의 흥망에 보조를 맞춰 부침을 거듭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굴기는 아직까지도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체제의 늪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반도에 격동적인 변화를 줄 것이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  bruce@surplusglob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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