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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웅의 실크로드 경영학] <11>고대 초강대국 중국과 현재의 중국
  •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
  • 승인 201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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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탑에서 확인한 중국의 고대 기술력

시안(西安)의 소안탑(小雁塔)은 중국 당나라 시절이던 경용(707년 - 710년)연간에 때 장안성 내 천복사 경내에 건립된 벽돌탑이다. 현재 높이는 13층, 43m이지만 당시는 15층, 88m이었다고 전해진다. 송대 이후 지진 등의 재해가 자주 있어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소안탑의 위치는 서울로 치면 명당으로 꼽히는 정보통신부 자리에 버금간다. 수양제와 측천무후의 아들이 이 자리에서 태어났고, 이후에 천복사가 세워졌다.

13층 높이의 소안탑.

중국은 큰 돌이 귀해 벽돌로 탑을 만들었는데, 1300년전의 벽돌탑이 수많은 지진을 버티고 아직까지 꿋꿋하게 서있는 것을 보면 당대에 완벽한 수평·수직의 구조학적 설계 기술이 우리가 생각했던 수준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에서 전탑 건축양식을 배워왔지만 화강암이 많아 중국식 벽돌탑(전탑) 모양을 구현하기 위해 화강암을 깍은 돌로 탑(모전석탑)을 쌓기도 하였다.

중국 석상들의 조각기술은 한반도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하고 뛰어나다. 주로 맥반석을 깎아서 조각을 만들었는데, 한국의 화강암에 비해 쉽게 정교한 조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차이가 나는 또 다른 요인이 있다. 한국 석상은 주로 승려들이 만들면서 사장되는 기술이 많았는데, 중국에서는 장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조각 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특히 고대 중국조각은 현실감이 있다.

시안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석상. 중국에서 황제의 무덤 중에 도굴되지 않은 무덤이 거의 없다고 한다. 보통 황제가 죽으면 바로 도굴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도굴이 안된 무덤은 진시황릉과 한 경제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박물관의 명품은 다 도굴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중국의 도장 문화는 상업과 무역의 발달로 인해 생긴 것이다. 한국전쟁때 중공군 시체에는 대부분 도장이 있어 신원확인이 쉬웠다고 한다. 중국의 고대 무덤을 발굴할 때도 도장이 같이 발굴되는 경우가 많아 신원확인이 쉽다고 한다. 반면 상업이 발달하지 않은 한반도에서는 무덤을 발굴해도 도장이 없어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과 서양의 기술 개량 속도 차이

시안성벽(西安城墙)은 명나라 초기에 당나라 장안(長安) 황성(皇城)의 기초 위에 건조한 것으로,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고성벽이다. 성벽 위가 왕복 4차선보다 더 넓은데, 이는 중국 왕조들의 방어 전략이 농민군에 의존하는 인해전술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부족한 서양은 정교한 기계산업으로 최고성능의 대포를 만들 수 있었지만, 사람이 많은 중국은 굳이 기계를 계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 성벽 위에 투석기 등 방어용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어 수백명이 동원돼 적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태평천국의 난’ 때에도 서양 군인들이 대포를 쏴서 중국의 농민군을 여러 명 죽이면 바로 그 자리에서 사람을 채워넣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안성벽 귀퉁이에서 발견한 투박한 옛날 수레바퀴들.

중국 수레바퀴는 진나라 이래 거의 2000년간 개량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한반도도 고구려 수레바퀴가 조선말까지 큰 개량없이 비슷하게 유지되었다. 반면 서양은 철로 수렛살을 만든 이후, 혁신을 거듭해 자동차까지 발전을 지속했다. 사람이 많은 중국은 인력 덕분에 기계를 개량할 필요가 별로 없었으나 사람이 적은 유럽은 인력의 부족을 수레, 기계 개발로 극복해나갔다. 이것이 산업혁명으로 이어져 서양의 산업 역전이 가능했다고 한다. 심지어 조선에서는 외적의 침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수레가 다닐 만한 길도 만들지 않았다.

21세기 세계를 이끄는 두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원형은 고대의 로마와 한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서구에서 로마를 계승한 공화정 국가이며, 중국은 한나라가 구축한 중화세계를 계승한 나라다.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는 (페르시아와 쿠샨왕조도 있었지만) 큰 그림에서 볼 때 중국과 로마 두 나라를 중심으로 세계사의 큰 틀이 만들어진 중요한 시기다.

이전 100년은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서 풍운이 일었다. 진시황의 중국통일, 마케도니아 알렉산더의 제국건설, 마우리아 왕조의 인도통일이 있었으나 이 셋 모두 오래가지 못한다. 지중해에서 황해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대륙 전역에서는 새로운 시대질서를 요구했고, 한(漢)·로마·쿠샨·페르시아가 이 시대를 주도했다.

페르시아가 금은세공품과 비단 등 중개무역을 통해 큰 이익을 보며 두 나라의 접촉을 막았지만 한나라는 로마 대진(大秦)의 존재를 알았다. 기원후 91년 몽골고원의 북흉노는 한족과 신흥 선비족에 쫓겨갔다. 2세기 후 훈족으로 유럽사에 등장하는데, 4세기 중반에는 흑해에 살던 고트족을 공격하며 유럽 공포로 몰아넣는다. 이들 훈족으로 인해 수많은 고트족 피란민이 로마제국 변방에 몰려들어 대혼란을 일으켰고, 이는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서로마의 붕괴를 불러왔다. 서기 166년 후한(後漢)시대 대진 사절단(또는 상인)이 낙양에 와서 상아, 무소 뿔, 거북 껍질를 바쳤고 3일간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나라는 중화사상과 중화제국의 기초를 닦았고 동아시아 문화의 기초를 만들었다. 로마는 현대국가의 원형을 제공하였다. 2000년전 한나라와 로마 양대제국은 간접적으로 접촉하며 서로 호의를 가졌었지만, 21세기에 이들을 계승한 중화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과 갈등을 벌일것이 자명하다.

1839년 아편전쟁 이래 서구열강에게 짓밝혔던 140년의 혼란기를 벗어난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당(大唐) 제국이 이루었던 호한(胡漢)융합과 견줄만한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난 10년간 경제 규모를 3배 키우고 미국을 바짝 따라온 중국은 한국과 지난 20년여년간 경제적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종속된 한국과 어떤 관계를 만들 것인가? 대당제국이 신라와 함께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켰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은 남북대치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중국몽, 존경받는 국가가 돼야 이뤄진다

몇 년전 중국에 연수를 가서 다양한 중국 정치인들을 만나고 온 국내 정치인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중국의 지도자들과 만나며 '고립된 중국'을 느꼈다고 한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는 14개국인데, 그 14개국 중에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나라는 오로지 북한 하나였다는 것이다.

필자가 만나 본 중국의 주변국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에 대한 잠재적 위협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고, 상당수는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2010년 9월 센카쿠 부근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이 충돌하자 일본은 중국 어선의 선장을 구속했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중단 등 경제보복과 정치, 민간 교류 중단 등으로 일본을 압박했다. 일본은 이에 굴복해 중국 선장을 재판도 하지 않고 석방했으나 이 사건은 일본에서 아베 등 우익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11월 몽골에서 달라이 라마를 초대하자 중국은 철도건설, 광산개발 등을 위한 차관제공을 중단했다. 몽골은 3개월만에 항복 선언을 하고 "다시는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반도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보복을 가져올 것이다. 요즘의 중화인민공화국은 하드 파워는 세지만 소프트 파워는 당나라때에 훨씬 못미치는 것 같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그리는 ‘중국의 꿈(中國夢),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경제적 성공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과 같은 주변국으로부터 존경받는 국가가 되지 않는다면, 시진핑의 중국몽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  bruce@surplusglob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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