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증세 등 재원 마련…최소 15% 법인세 부과
전기차 세액공제 대상, 미국산으로만 제한해 논란

미국 하원이 12일(현지시간) 7400억달러(약 966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는 이른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을 통과시켰다.

재생가능 에너지 등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서민들에 대한 의료지원 등을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지난 7일 상원을 통과한데 이어 이날 하원에서도 속전속결로 통과됨으로써 바이든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다음주 업무에 복귀하는 대로 서명할 예정이다.

이 법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법안인 ‘더 나은 재건’(BBB) 법안을 축소 수정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8개월 동안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에서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중대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서 찬성 220대 반대 207표로 통과됐다. 민주, 공화 양당이 당론으로 찬성, 반대를 결정한 뒤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진 반면 공화당 의원 4명은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 앞서 상원은 지난 7일 표결에서 상원 당연직 부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 보트를 더해 1표차로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법 시행을 위해 소요되는 예산은 크게 4400억달러 정책 지출과 3000억달러 재정적자 감축으로 구성됐다. 기후변화 대응에는 3750억달러를 투입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오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을 40% 줄이겠다는 목표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일정 요건을 갖춘 중고차에 최대 4000달러, 신차에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각각 세액 공제 형태로 지원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10년간 세액 공제를 해주고, 청정에너지 제조 기업에 900억달러(118조원) 세제 혜택을 주는 조항도 있다.

법이 통과되면서 우선 예산 마련을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법인세를 올리고, 기후 위기에 대응해 태양광 등 재생가능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며, 처방약 값 인하에도 나서게 된다. 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아예 탄소를 배출하지 않도록 하는 산업을 비롯해 청정에너지 산업으로 전환하는 기업과 가계를 지원하고,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신규 투자 프로그램도 지원하게 된다.

법인세 등을 올려 재원을 마련하기 때문에 재정 적자까지 낮출 수 있다고 민주당은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최저법인세율 15%를 도입했다. 필요한 재원은 대기업 증세와 세무조사 강화 등을 통해 확보한다. 연간 10억달러(1조3000억원) 이상 수익을 올리는 대기업에는 15% 최저 실효세율을 적용, 앞으로 10년간 2580억달러(337조원)의 법인세를 더 걷는다는 계획이다. 또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에는 1% 세금을 물리도록 했다.

그러나 최저법인세율이 적용되는 대기업들은 약 150개 업체에 불과해 경제에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또 미 국세청(IRS)에 800억달러를 배정해 부유층과 기업들의 탈세를 막는 재원으로 쓰도록 했다.

다만 이번 인플레 감축법이 담고 있는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과 관련, 편파적 조항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법은 우선 중국산 핵심 광물과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를 혜택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된 핵심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 만든 배터리를 탑재하고, 미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일본·독일 등 해외 자동차 업체는 물론 미국내 제조사들조차 요건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같은 제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우선 전기차 업체들은 2023년까지 리튬 등 배터리 소재의 최소 40%를 미국 또는 캐나다·칠레·호주 등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만 조달해야 한다. 또 기업들은 이 비중을 오는 2026년까지 80%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 제한 규정을 둘러싸고 일찌감치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연합(EU)도 우려를 나타내고 수정 보완을 촉구하고 있는 이유다.

앞서 미리엄 가르시아 페러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담긴 전기차 세액 공제의 내영과 관련, “이 법안은 해외 자동차 회사를 차별하는 것”이라며 “당연히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도 상충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법안에서 이런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고 WTO 규범에 완전히 부합하도록 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현재 모든 전기차를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도 당장 수혜를 기대하기 어려울뿐더러 배터리 업계도 소재 수입 의존도가 컸던 중국외에 공급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걸림돌이 크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한·미 FTA와 WTO 협정 등에 위배될 수 있다는 우려를 공식 표명하고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같은 우려를 담아 전날 ‘북미 내’로 규정된 전기자동차 최종 조립 및 배터리 부품 요건을 완화해 줄 것을 미 통상 당국에 요청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도 앞서 지난 10일 미국 하원에 의견서를 전달하면서 한국산 전기차가 앞으로도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의 개정을 요청했다. 협회측은 “한미 양국이 체결한 FTA에 따르면 수입품 대신 국내 상품 사용을 조건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금지돼 있어, 이 규정을 감안해 한국 정부는 국산이나 수입산 전기차 차별 없이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세제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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