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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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역내에서 이르면 2031년부터 리튬이나 코발트 등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사용되는 핵심 원료 재활용이 의무화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배터리 3사가 모두 유럽 시장에 진출해 있어 향후 법 시행에 따른 면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업계와 긴밀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인 한편, 폐배터리 리사이클 등 새로운 먹거리도 열릴 것이라는 기대다.

유럽의회는 14일(현지 시각) 본회의에서 찬성 587표, 반대 9표, 기권 20표로 배터리 설계에서 생산, 폐배터리 관리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담은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2020년 12월 초안을 발의한 지 약 3년 만이다. 이날 의회의 승인으로 남은 형식적 절차인 EU 이사회 승인 및 관보 게재를 거쳐 발효된다.

EU는 법 발효 시점을 기준으로 8년 뒤부터는 역내에서 새로운 배터리 생산 시 핵심 원자재의 재활용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재활용 의무화 적용 시점은 2031년이 유력하다. 다만 조항별 구체적 이해 방법 등을 담은 10개 이상의 하위 법령들은 오는 2024~2028년 제정될 예정으로, 법의 실제 적용까지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새 배터리법은 유럽 지역에서 거래되는 모든 종류의 배터리의 디자인, 생산, 폐기 등 생애주기를 관리하고 친환경성을 강화하기 위한 규제다. ▲배터리 전주기에 걸쳐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는 탄소발자국 제도 ▲리튬·니켈 등 광물을 재사용하는 재생원료 사용제도 ▲배터리 생산·사용 등의 정보를 전자적으로 기록하는 배터리 여권제도 등이 핵심 내용이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가 본격 보급되기 시작하자 향후 폐배터리 급증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오염 등을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면서 EU 차원에서 입법이 진행됐다.

새 배터리법은 구체적으로 원자재별 재활용 의무화 비율을 적시했다. 시행 8년 뒤 기준 코발트 16%, 리튬 6%, 납 85%, 니켈 6% 등이다. 시행 13년 뒤에는 코발트 26%, 리튬 12%, 납 85%, 니켈 15%로 의무화 비율이 높아진다.

재활용을 위해 폐배터리 원료 회수 최소 기준도 도입된다. 오는 2027년까지 폐배터리에 있는 리튬의 50%, 코발트·구리·납·니켈은 각각 90%씩 의무적으로 수거하도록 규정했다. 2031년에는 리튬은 80%, 코발트·구리·납·니켈은 95%로 수거 의무 비율이 확대된다. 휴대용 폐배터리의 경우 당장 올해 45% 수거 의무가 적용되며, 2030년까지 73%로 단계적으로 늘어난다.

생산 공정에 대한 규정도 강화된다. 전기차 및 전기자전거와 같은 경량 운송수단(LMT) 배터리 등은 생산·소비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총량을 의미하는 ‘탄소 발자국’ 신고가 의무화된다. 휴대전화 등 휴대용 배터리는 소비자들이 쉽게 분리하고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전기차·LMT 배터리 및 2㎾h 이상인 산업용 배터리는 각각의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디지털 배터리 여권’이 도입된다. 또 중소기업을 제외하고 모든 역내 관련 업계에 대한 공급망 실사 규정도 적용될 예정이다. 한국의 경우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배터리 3사가 모두 현지 사업장을 두고 있어 공급망 실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EU는 “새로운 법률은 배터리 분야에서의 기술 발전과 미래 과제를 고려했다”며 “디자인에서 폐기까지 전체 배터리 수명을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업계는 EU 배터리법 도입에 따른 영향 파악에 분주한 모습이지만, 현재로선 부정적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해당 법에는 특정 기업에 차별적으로 적용되거나 우리 기업에게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조항은 없어 우리 기업들의 EU내 시장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오히려 배터리 친환경성 강화가 글로벌 스탠다드인 만큼 이번 법을 계기로 공급망과 제도들을 선제 정비할 경우 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EU 통상현안대책단 중심으로 EU 배터리법에 대응해왔다고 전했다. 산업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 기업의 EU 내 영업활동이 저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법과 하위법령을 제정해 줄 것을 지속 요청한 바 있다”면서 “광물별 재생원료 관련해서는 정부와 업계가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 폐배터리에 한정되던 출처가 배터리 제조 폐기물까지 확대됐다”고 밝혔다.

업계는 주요 조항의 본격 시행까지는 시간이 있는 만큼, 앞으로 이 법의 요건 충족과 하위법령 제정 등에 차분히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탄소 발자국의 경우 법 시행 이전부터 추진중인 배출통계 구축과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해 노력하고, 재생원료 의무 사용은 8년의 준비 기간이 남은 만큼 배터리 재활용 공급망 구축개발과 기술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동시에 EU 배터리법의 폐배터리 리사이클 관련 규제는 그동안 미래 사업으로 준비해왔던 국내 업계에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중국의 코발트 생산 기업인 화유코발트와 폐배터리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또한 LG화학과 북미 최대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 ‘라이사이클’에 지분 투자를 단행해 지분 2.6%를 확보하고, 10년간 2만t의 재활용 니켈을 공급받기로 했다.

삼성SDI는 이미 서둘러 폐배터리에서 니켈과 리튬 등을 회수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국내 공장에서 발생한 불량품이나 폐기물을 회수해 원자재를 추출하고 있으며 이를 배터리 제조에 활용한다.

SK온은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을 통해 폐배터리 사업을 키우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폐배터리로부터 리튬, 망간, 코발트, 니켈 회수를 위한 반응·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또 지난해 성일하이텍과 국내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으며 2025년 상업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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