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수출 규제가 유사시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에 기반한 국제 통상 무역 체계가 향후 더욱 무력화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美 상무부 中 수출규제 총 14차례, 300여개 업체 이상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칩을 들고 있다. /사진=Reuters

미국 상무부는 23일(현지시간) 중국 폴리실리콘 제조 업체 호신실리콘산업을 포함한 5개 중국 업체를 새롭게 수출제한 대상목록(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미국은 지난 2018년 이후 기술 탈취 위험 등을 근거로 중국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을 제재하고 있다. 

현재까지 수출제한 대상목록에 오른 중국 반도체 기업으로는 화웨이·하이실리콘·SMIC 등이 있다. 해당 리스트에 오른 기업에는 미국 업체들이 물품을 수출할 수 없다. 전 세계 반도체 제조 장비와 설계 기술을 60% 이상 보유한 미국 기업과 거래가 단절된 중국 업체들은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시장에서 퇴출 위기에 몰리기 일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국의 수출제한 대상 지정은 총 14차례 이루어졌다. 본사 및 해외 계열사 등을 포함해 300여개 넘는 중국 업체들이 해당 목록에 올라간 상태다.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는 미연방 수출관리규정(Export Administration Regulation, EAR)을 근거로 한다. 

박정민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23일 경기도 판교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진행된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가능성과 우리의 대응' 세미나에서 "미국의 수출 통제는 관할 확대와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수출 통제는 전통적인 수출 통제 방법과 다소 상이하다. 통상 수출 규제라 함은 특정 품목을 특정 국가에 수출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미국은 예외적으로 제 3국에 동일한 수출 규제를 적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이라도 미국 기업의 원천 기술을 사용하거나 주요 미국산 부품 등이 포함된 경우 수출을 위해선 미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코어룰 대비한 국내 반도체 업계 대응 마련 필요

자료=SEMI

향후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원천 기술을 사용한 미국의 수출 통제다. '코어룰(Core Rule)' 혹은 '포린 다이렉트 프로덕트(Foreign Direct Product)'라고 지칭되는 해당 수출 규제는 군수 및 항공우주 산업 등 국가 안보와 밀접하게 연관된 경우에 적용돼 왔다. 그러나 작년부터 미국은 코어룰을 반도체·전자·컴퓨터·통신 등의 분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박 변호사는 “미국의 원천 기술을 활용했다면 반도체 자체가 EAR 적용 대상이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AR 적용 대상이 된다고 해서 모든 제품에 대해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일단 적용 대상이 될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이에 대한 체계적인 실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아직까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이에 대한 대응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향후 반도체 수출시 제품을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현재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중국에 물품을 수출할 때 중개상 등 현지 유통사를 거치는 경우가 많은데 의도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도체 생산 시 ▲미국 원천 기술 사용 여부 ▲EAR 품목 ▲최종 소비자 정보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할 전망이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날 미국 반도체 정책을 설명하며 "통상 규범 측면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수출 제한과 보조금 지원 등의 반도체 육성 정책이 현행 국제 통상 규범과 충돌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국내 산업을 우대하겠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WTO 원칙에 위배된다"며 "누가 해당 문제를 제기할 것인지 또한 미국이 해당 문제 제기를 염두할 것인지의 여부도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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