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분기 외장 GPU(그래픽프로세싱유닛) 산업에 거대한 변곡점이 형성된다. 그동안 엔비디아⋅AMD가 1강 1약으로 양분했던 시장에 인텔이 참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2010년 전후 AI(인공지능)용 반도체로서의 GPU 수요가 창출된 이래 암호화폐 채굴 수요까지 겹치면서 GPU 시장은 극심한 공급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라자 코두리 인텔 수석부사장. 애플 및 AMD를 거친 코두리 수석부사장은 그래픽 분야 최고 전문가다. 2017년 인텔 합류 이후 외장 GPU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사진=인텔
라자 코두리 인텔 수석부사장. 애플 및 AMD를 거친 코두리 수석부사장은 그래픽 분야 최고 전문가다. 2017년 인텔 합류 이후 외장 GPU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사진=인텔

내장 그래픽 집중하던 인텔, 외장 그래픽 출시

 

PC 관련 하드웨어를 전문으로 다루는 팁스터 ‘APISAK’은 지난 6월 트위터를 통해 인텔 DG2(Discrete Graphics2) 라인업 중 하나인 448EU 성능을 공개했다. 448EU는 인텔이 외장형 GPU로 개발하고 있는 모델들 중 상위급 제품이다. APISAK은 448EU의 성능이 엔비디아 RTX 3070이나 AMD 6700XT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RTX 3070은 엔비디아 GPU의 상위급 제품 중 하나다. 엔비디아 GPU는 세 번째 나오는 숫자(7)가 성능과 용도를 나타내며, 숫자가 클수록 고급 기종이다. 7번대 제품은 4K 해상도와 3D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모델이라는 의미다. 

인텔의 외장 GPU는 아직 정식으로 출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벤치마크 숫자상으로만 보면 현재 시장에서 웃돈을 얹어 거래되는 엔비디아 GPU 성능에 뒤쳐지지 않는 것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텔이 외장 GPU를 선보일 것으로 예견된 건 지난 2017년부터다. 애플⋅AMD를 거친 그래픽 전문가 라자 코두리 수석부사장을 영입한 이후 인텔은 Xe 그래픽 아키텍처 개발에 돌입했다. 이전에도 인텔은 GPU를 개발했었으나, CPU에 내장된 형태였다. 내장 GPU는 CPU와 메모리(RAM)를 공유하는 탓에 그래픽 처리 속도를 극대화하기가 어렵다. 외장 GPU는 CPU와는 별도로 전용 메모리를 탑재해 높은 연산능력이 필요한 그래픽 작업도 손쉽게 처리한다.

팁스터 APISAK이 인텔 448EU 성능을 공개한 트위터.
팁스터 APISAK이 인텔 448EU 성능을 공개한 트위터.

그리고 인텔은 외장 GPU 출시와 함께 게이밍 PC 시장을 정조준 했다. 당초 외장 GPU 시장이 창출될 수 있었던 것도 복잡한 그래픽, 그 중에서도 3D 게임을 위한 전용 하드웨어 필요성이 대두되면서다. 게이밍 PC 시장에서 외장 GPU 성능을 인정 받아야 그 다음 단계로 진출할 발판이 생긴다.

인텔은 외장 GPU 전용 브랜드를 ‘아크(Arc)’로 정했는데, 첫 번째 출시되는 모델 이름은 ‘알케미스트(연금술사)’다. 이후 세대들 이름으로 예정된 ‘배틀메이지’, ‘셀레스트리얼’, ‘드루이드’ 등도 모두 판타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에서 따왔다. 인텔이 외장 GPU 출시와 함께 게이밍 PC 시장에 그만큼 공을 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알케미스트는 그래픽 내의 빛과 그림자를 실시간 처리해주는 ‘레이트레이싱’ 기능을 제공한다. 엔비디아 GPU는 GTX 계열과 RTX 계열로 나뉘는데, 레이트레이싱은 고급 제품인 RTX에서만 제공한다. 게임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공급 부족이 과중된 외장 GPU 시장에 내년이면 강력한 대안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한껏 기대하는 사용자가 늘고있다. 

 

종착지는 AI 및 슈퍼컴퓨터용 GPU

 

인텔 GPU가 게이밍 PC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최종적으로 정복할 시장은 AI 및 슈퍼컴퓨터용 GPU 시장이다. 

반도체 업계서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도달했음에도 최근 10여년간 슈퍼컴퓨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건 GPU의 발전 덕분이다.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0위권 이내 슈퍼컴퓨터 중 7개가 GPU를 탑재하고 있을 정도다. 

스위스 국립슈퍼컴퓨팅센터에 설치될 알프스. /사진=CSCS
스위스 국립슈퍼컴퓨팅센터에 설치될 알프스. /사진=CSCS

그리고 이 시장은 외장 GPU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다. 최근 미국 아르곤연구소의 슈퍼컴퓨터 ‘폴라리스’, 스위스 국립슈퍼컴퓨팅센터 ‘알프스’에 엔비디아 GPU를 탑재하기로 했다. 

최근 AI가 테크 뿐만 아니라 사회 각 영역으로 빠르게 침투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뒷받침하는 슈퍼컴퓨터에 대한 투자도 뒤따를 수 밖에 없다. 인텔이 데이터센터용 CPU 시장에서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만큼, 향후 외장 GPU 사업에서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한 서버 업체 관계자는 “원래 AI와 슈퍼컴퓨팅은 극소수 한정된 영역에서만 사용하던 기술이었으나 최근에는 용도가 크게 늘고 있다”며 “GPU가 게이밍 영역을 벗어나 슈퍼컴퓨팅 산업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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