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
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
  • 석대건 기자
  • 승인 2018.06.0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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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각지대에 갇힌 고령층

[키뉴스 석대건 기자] 지하철 노약자석, 한 청년이 할아버지에게 스마트폰을 보며 무언가를 한참 설명하고 있다. “할아버지. 이 열차는 구로역까지만 가요. 독산역에 가시려면 중간에 내리셔서 다른 열차를 타셔야 해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 방향이 아니냐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스마트폰 지하철 지도는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청년은 할아버지와 함께 내려서 병점행 지하철을 타야 했다.

“아유, 왜 저런 걸 물어보고 있대.”

이와 비슷한 상황은 은행에서도 발생한다. 오후 1시가 되면 대부분의 은행 창구는 어김 없이 대기 고객들로 가득 차고, 번호표에는 40~50분의 대기 시간이 찍힌다. 대기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10명 중 7~8명은 고령층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들이 손에는 현금을 끼워진 통장을 들고 있다. 대부분 단순 입출금이 목적이다. 고령층은 잘 이체된 게 맞냐며 뻔한 질문을 은행원에게 건넨다. 그들 뒤에선 기다림에 지친 고객들의 핀잔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아유, 왜 저런 걸 물어보고 있대.”

공고해지는 스마트폰 사각지대

스마트폰 인터넷 환경의 확산이 디지털 사각지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2017년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만 3세 이상 인구 스마트폰 사용자 비율은 87.8%에 달한다. 10명 중 9명꼴이다. 60대 이용자까지도 81.2%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70세 이상으로 넘어가면 31.2%로 사용률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렇다면 70세 이상 연령층은 스마트폰이 없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제니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스마트폰 보급률은 84.2%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고령층은 스마트폰을 가지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 (사진=픽사베이)
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 (사진=픽사베이)

일상 생활에까지 영향을 주는 디지털 괴리

디지털 사각지대는 생활과 관련된 영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최근 금융권은 디지털 전략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영업점을 대폭 줄이고 있다. 30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의 지점·출장소는 2017년 12월 기준 4,812개로, 2016년 12월(5113개)에 비해 301개나 감소했다. 고령층에 그나마 익숙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덩달아 줄여나가는 추세다. 이러한 디지털 금융의 확산 추세는 영업점 축소를 통한 비용 절감이 목적이다. 금융 디지털 전략이 강화될수록 고령층이 받는 차별이 심화된다. 

금융뿐만 아니라 정보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세대별 스마트폰 이용 특성과 영향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10대와 20대의 경우 70% 이상이 스마트폰을 필수 매체로 선택한 반면, 50대는 42.3%, 60대 이상은 29.6%에 불과했다. 고령층에 가까울수록 TV를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뉴스와 정보가 디지털을 통해 유통 · 소비되는 상황에서 70대 이상 연령층은 정보 습득의 사각지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연령별 필수 매체 인식 변화도 (자료=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령별 필수 매체 인식 변화도 (자료=정보통신정책연구원)

디지털 정보에 대한 격차도 고령층으로 갈수록 두드러진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6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의 장노년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일반국민의 54.0%의 수준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정보화 지수는 모바일 기반으로 유무선 융합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정보격차의 수준 및 특성을 종합적으로 측정한 지표다. 디지털 정보의 접근 분야는 '유무선 정보기기 보유여부’와 ‘인터넷 상시 접속가능여부, 역량 분야는 ‘컴퓨터 이용능력’과 ‘모바일 기기 이용능력’, 활용 분야는 ‘유선 및 모바일 인터넷 이용여부’, ‘인터넷 서비스 이용 다양성’, ‘인터넷 심화 활용 정도’로 측정되었다.

연령별 디지털 정보 격차. 디지털 정보 접근은 '유무선 정보기기 보유여부’와 ‘인터넷 상시 접속가능여부, 디지털 정보 역량은 ‘컴퓨터 이용능력’과 ‘모바일 기기 이용능력’, 디지털 정보 활용은 ‘유선 및 모바일 인터넷 이용여부’, ‘인터넷 서비스 이용 다양성’, ‘인터넷 심화 활용정도’로 측정되었다. (자료=한국정보화진흥원)
연령별 디지털 정보 격차 (자료=한국정보화진흥원)

긍정적인 사용 경험을 제공해야

실태조사 결과, 55세 이상 장노년층에서는 자신에세 가장 필요한 분이 은행 등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용 부분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 활용에 대한 욕구는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이한 점은 70대 이상에서는 68.3%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변했다는 점이다. 이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용도로 이용하는 수준ʼ(30.4%)보다 2배이상 높은 수치로, 고령층일수록 스마트폰의 기능 자체를 알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55세 이상 장노년층이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컴퓨터나 인터넷 이용 수준 (자료=한국정보화진흥원)
55세 이상 장노년층이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컴퓨터나 인터넷 이용 수준 (자료=한국정보화진흥원)

캐어유 신준영 대표는 실질적인 스마트폰 활용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한다. 고령층에게 스마트폰 교육을 통해 치매 예방을 돕는 캐어유를 운영하는 신 대표는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70대 이상 연령층이 스마트폰에 익숙해지기까지 4~8주 정도 걸린다”며 “어느 정도 교육만 이뤄지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신 대표는 “스마트폰 교육을 이수한 어르신을 보면 노후생활의 여유가 다르다”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마트폰이 삶의 질도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 고령층이 가진 스마트폰 인식을 개선하는 정책 우선되어야 한다고 신 대표는 조언했다. 여전히 고령층에 보이스 피싱 등 정보 기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 신 대표는 “고령층도 긍정적인 사용 경험하게 되면 스마트폰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사각지대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 디지털 포용 전략으로 격차 해소

이러한 고령층의 디지털 격차는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는 2015년부터 공공기관의 모든 절차를 디지털화하려고 시도했으나, 70세 이상의 고령층에서 적응하지 못한다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에 파리시는 ‘디지털 포용’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디지털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디지털 활용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행정민원, 은행업무, 구직 신청 등 많은 절차가 온라인화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디지털 포용 전략 아래, 디지털 정보 격차 현황 지도를 제작하고, 디지털 인프라 설치, 교육 및 전문인력 양성 등 디지털 정보격차를 없애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7년에는 68개 시민단체의 81개 프로젝트에 약 67만 2천 유로(8억 8천만 원)를 지원했으며, 일련의 디지털 포용 활동의 기간을 연장했다. 

파리시 디지털 포용 전략의 세가지 축 (자료=서울연구원)
파리시 디지털 포용 전략의 세가지 축 (자료=서울연구원)

한국정보화진흥원 고정현 수석연구원은 “디지털 격차는 고령층의 신체적인 이유와 디지털 기기의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폴더폰과 달리 직관적으로 숫자가 보이지 않는 화면, 작은 글자 등 스마트 기기는 고령층이 편하게 사용하기 어렵다. 특히 “75세 이상의 후기 노령 인구 같은 경우 스마트폰을 사용해 전화 통화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직접 교육이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어르신을 모집해 비슷한 연령층에게 일대일 혹은 이대일로 사용법을 가르치는 ‘IT 봉사단’을 구성하여 교육사업을 진행 중이다.

고정현 수석연구원은 “모든 실생활 서비스가 모바일 중심으로 제공되는 시대다. 고령층 스마트폰의 활용성 제고는 그들의 생존과도 연관된다”며 고령층의 디지털 사각지대 문제에 대한 시대적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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