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판은 깨진 유리창?
방치된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판은 깨진 유리창?
  • 석대건 기자
  • 승인 2018.06.15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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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지난 광고 하나 있다고 무슨 일이 생길까 싶다. 하지만 깨진 유리창도 처음에는 별 문제 없었다.

[키뉴스 석대건 기자] 6호선의 한 지하철 역사에는 오늘을 의심하게 만든 스크린도어 광고판이 걸려있다. 지난 11월에 실시한 전국 기관 단위 지진대피훈련을 알리는 내용이다. 왜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걸려있는 것일까?

지난 6월 6일까지도 2017년 11월 실시된 행정안전부의 훈련 안내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가 게시됐다.
지난 6월 6일까지도 2017년 11월 실시된 행정안전부의 훈련 안내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가 게시됐다.

훈련 주최 기관인 행정안전부 지진방재관리과에선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훈련 담당자인 이샘 사무관은 “광고 기간은 15일이었다”며 “업체 입장에서는 다 광고비”라며 아직까지 걸려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을 알기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광고기획팀에 문의했다. 정부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통해 광고를 집행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광고기획팀 담당자는 “15일만 광고를 낸 게 맞다”며 “아직 폐첩이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폐첩'은 광고업계 용어로, 광고를 떼어낸다는 뜻이다. 반대로 광고를 붙이는 용어는 ‘게첩’이다. 담당자는 “공익성 광고의 경우, 다른 광고가 없다면 그대로 두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광고대행사에 문의해 폐첩되지 않은 구체적인 이유를 듣고자 했으나, 계약상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익성만 있다면 괜찮나?

그렇다면 일시가 지난 지진 대피 훈련 광고는 정말 공익성이 있는 것일까? 공공기관 광고를 다수 작업해온 이성만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훈련 일정을 단기 정보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큰 문제는 없다”며, “다만 장기 정보 전달 관점에서 보면 내용이 담긴 글씨가 너무 작아 노인들이 확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탁자 밑으로 들어가라는 안내 정보도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미정 경주아이쿱의 이사장이자 재난위원장은 지진 대피 정부 매뉴얼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미정 위원장은 “실제 지진이 나면 시민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재난을 마주하게 된다”며 “실내외로만 구분할 수 없고, 아파트인지, 주택인지, 지하인지, 고층인지에 따라 대처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아이쿱은 지난 2016년 12월 경주 지진 이후, 조합원을 대상으로 지진대피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재난 기구와 협력하여 우리나라에 맞는 지진 대피 매뉴얼 북을 제작하고 있다. 종합해보면, 위의 지하철 지진 대피 훈련 광고는 정보를 알리는 공익성보다는 광고를 위한 광고인 측면이 더 큰 셈이다.

스크린도어 광고판,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그렇다면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는 몇 개나 있기에 관리가 쉽지 않을 것일까? 

서울교통공사 홍보팀에 따르면, 1~8호선의 지하철에는 총 3,486개의 스크린도어 광고판이 있으며, 이 중 1,249개가 게첩된 상태다. 약 36% 정도다. 2008년 광고연감에는 전체 스크린도어 중 약 70%가 판매되었던 점을 비교하면, 약 10년 만에 절반 수치로 떨어졌다.

광고판 게첩 상황은 지하철 역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방화 방향으로 향하는 5호선 영등포구청 역의 경우, 설치된 11개의 스크린도어 광고판 중에서 3개만이 게첩되어 있었다. 하지만 수원 방향으로 가는 1호선 종로3가 역에는 18개의 스크린도어 광고판 모두 광고가 게시되어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이 1개, 지자체 축제 홍보가 1개였으며, 나머지는 게임 업체 등 기업 광고였다. 

종로3가
종로3가 스크린도어 광고판은 빈 곳 없이 모두 채워져 있다.
영등포구청역
반면, 영등포구청역에는 비어있는 광고판에 대부분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역으로만 광고가 몰려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최근의 논란을 보면, 광고주의 의도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숙명여대 중앙여성학동아리 ‘SFA’는 축제기간 동안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불법촬영 중단 등에 관련된 광고를 붙이려고 했으나 서울교통공사가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유는 ‘양성평등 광고는 민원이 많다’는 것이었다. 논란이 일자, 서울교통공사는 광고를 반려한 것이 아니며 심의 후 결정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서울교통공사에서는 모든 광고물에 대해 부서원 15명이 집단으로 심의하여 승인여부를 결정한다. 단순한 상업광고가 아닌,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한 주장이나 가치를 표현하는 광고는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 심의를 의뢰하여 그 결과에 따라 승인 여부를 판단한다고 밝히고 있다. 

양성평등 광고 논란이 일자, 서울교통공사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는 관련 이슈에 대한 문의가 빗발쳤다. (사진=서울교통공사 게시판 갈무리)
양성평등 광고 논란이 일자, 서울교통공사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는 관련 이슈에 대한 문의가 빗발쳤다. (사진=서울교통공사 게시판 갈무리)

비판하는 측은 기업 광고라고 해도 지나친 선정성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양성평등 광고가 더 무해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광고사업팀은 난처한 입장을 표하며 의견을 피했다. 

이와 관련하여, 서울시는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해 자체 광고·홍보물에서 성차별적 내용이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 성별영향분석평가는 정부의 주요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특성과 사회․경제적 격차 등의 요인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평가하여 정부 정책이 성평등을 실현하도록 돕는 제도다. 

그 예로, 여자화장실에만 있던 유아용 변기 및 아기기저귀 교환대를 남자화장실에도 설치하거나, 성인 남성 평균신장을 기준으로 설치된 지하철 손잡이 대신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다양한 높이의 손잡이와 기둥을 설치한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번 지하철 광고 게재 여부 논란 또한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확대 · 도입한다면 해결될 사안이며, 더불어 비어있는 지하철 광고에 대한 기준으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회적 · 정치적 문제에 대한 주장이나 가치’라는 모호한 기준이 70%의 스크린도어 광고판으로 비어두게 한 셈이다. 서울시의 ‘2017년 대중교통 이용현황’에 따르면, 작년 서울지하철 하루 평균 이용객은 798만3000명으로 나타났다. 800만 명은 이스라엘과 스위스의 국민 수와 맞먹는 수치다. 이용객 수치만 보아도 기업 등 광고주 입장에서 스크린도어 광고를 활용할 매력은 충분하다.

우리 사회 속에 숨겨진 깨진 유리창

다시 지진 대피 훈련 안내 광고로 돌아오자. 시기 지난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는 방치되었다는 점에서 ‘깨진 유리창’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란, 깨진 유리창을 고치지 않고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퍼지기 시작한다는 이론을 말한다. 사소한 무질서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비단 광고뿐일까? 지난 8일, 법원은 2년 만에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로 기소된 스크린도어 정비용역업체 은성PSD 대표 등 관련 피의자를 징역형에 선고했다. 구의역 사고는 깨진 유리창을 가진 집에 무너진 사건이었다. 

때 지난 광고 하나 있다고 무슨 일이 생길까 싶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안전하라고 만든 스크린도어가 어느 청년의 생명을 앗아갈지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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