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부품이 세트 산업을 쥐고 흔드는, 이른바 ‘꼬리가 개를 흔드는(Wag the dog)’ 상황은 크게 두 번 일어났다. 

우선 2005년 낸드플래시. 근래 고급 보조기억장치의 대명사인 낸드플래시는 원래 천덕꾸러기였다. 덮어쓰기가 불가능(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하고, 다른 메모리 반도체 대비 속도는 형편 없었다. 

낸드플래시가 IT 세트 시장을 좌우하는 반열에 오른 건 2005년 애플이 ‘아이팟 나노’를 출시하면서다. 이전까지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보조기억장치로 사용했던 아이팟은 나노 시리즈 출시와 함께 낸드플래시를 끌어 안았다. 

앞서 ‘아이팟 미니’가 끝내 넘어서지 못한 100g의 벽을 42g의 아이팟 나노는 가볍게 뛰어 넘었다. 두툼한 HDD가 낸드플래시로 대체되면서 가능했던 일이다. 덕분에 애플은 아이팟 나노로 MP3 플레이어 시장을 석권했다. 

애플 '아이팟 나노' 시리즈. /사진=애플
애플 '아이팟 나노' 시리즈. /사진=애플

다음은 2009년 발광다이오드(LED). 종전 냉음극형광램프(CCFL)를 광원으로 사용했던 TV는 2009년부터 좁쌀만한 LED를 광원으로 심었다. CCFL로는 TV를 아무리 얇게 만들어도 케이크 두께만큼 두꺼웠다. LED를 광원으로 적용한 TV는 단번에 시루떡만큼 얇아졌다. 

삼성전자는 ‘보르도 TV’에 이어 ‘LED TV’로 TV 사업에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경쟁사들이 삼성전자를 흉내내기까지 최소 반년 이상 걸렸다.

앞서 두 번의 사례에서 몸통을 흔든 꼬리들은 어떻게 됐을까. 결과적으로 영광의 순간은 찰나였다.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사업은 2005년을 기점으로 독주 체제를 더욱 굳혔으나 이내 경쟁사들의 과잉 투자가 이어졌다. 

삼성이 독립법인을 만들 만큼 위력적이던 LED 사업은 곧바로 중국발 투자 광풍이 몰아쳤다. 삼성전기서 분사한 ‘삼성LED(현 LED 사업팀)’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트 산업을 뒤흔드는 부품의 영향력은 짧은 순간 막대한 영업이익을 선물한다. 동시에 경쟁사들의 투자 욕구도 강하게 자극한다. 소수 공급사에 의존하기 싫은 세트 업체가 제 2, 제 3 후보들의 대규모 투자를 유도함은 물론이다. 당사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꼬리가 개를 흔드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는 2020년, 스마트폰 산업은 폴더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라는 꼬리에 몸통이 가열차게 흔들릴 지경이다. 길쭉한 직사각형 일색인 스마트폰 시장에서 폴더블 스마트폰의 존재감은 강렬하다. 2020년 이후 스마트폰 시장은 폴더블 OLED를 원활하게 수급 가능한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로 나뉜다.

현재 양산성이 검증된 폴더블 OLED를 공급할 수 있는 회사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유일하다.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과 삼성디스플레이 OLED 사업은 내년을 기점으로 만개할 것이다.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관건은 삼성전자와 달리 삼성디스플레이에게 영광의 순간이 얼마나 갈 수 있냐는 점이다. 이미 LCD 시장을 초토화시킨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중소형 OLED에도 자살행위에 가까운 돈을 쏟아붓고 있다. 

내년, 길면 내후년까지는 삼성디스플레이가 폴더블 OLED의 절대적 공급사이겠으나 2022년 이후는 어떻게 될까. 폴더블 OLED 수요가 뻔히 보임에도 삼성디스플레이가 신규 투자를 주저하는 건 이 때문이다. 

‘갤럭시 폴드’ 같은 북오픈(Book Open) 타입의 폴더블보다 모토로라 ‘레이저’ 처럼 클램쉘(Clam Shell) 스타일이 득세하면, OLED 수요 진작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이번 폴더블 스마트폰 발 OLED 수요가 지난 2017년에 버금가는 투자 사이클을 이끌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그래서 아직 섣부르다. 최소 5년은 이익을 내야 하는 장치 산업에서 3년 뒤 다가올 레드오션 상황에 눈감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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