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5세대(5G) 이동통신과 한국의 5G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속도다. 

이동통신 시장조사업체 오픈시그널(OpenSignal)에 따르면 실제 미국 5G 최고 다운로드 속도는 1.2Gbps지만 한국은 988Mbps에 그친다. 삼성전자·버라이즌·퀄컴·모토로라는 최근 미국에서 5G 망을 활용, 다운로드 기준 4.2Gbps 속도까지 구현했다.

국내 소비자들은 기대에 못미치는 5G 서비스에 불만을 토로한다. 5G 요금제를 가입했다가 다시 4G LTE로 전환하는 가입자까지 생겨나고 있다.

 

주파수 대역과 데이터 전송 속도의 상관관계

속도 차이가 나는 건 주파수 대역 때문이다. 미국 이동통신사들은 선제적으로 28㎓ 대역에서 5G를 상용화한 반면 한국 이동통신사들은 3.5㎓ 대역, 즉 6㎓ 이하(Sub-6㎓) 대역으로 5G를 시작했다.

5G 다운로드 속도는 백본(Backbone) 기준 최대 20Gbps다. 24㎓ 이상 밀리미터파(mmWAVE) 대역과 6㎓ 이하 대역을 함께 활용했을 때 이정도 속도가 나온다. 

기여도는 밀리미터파가 더 높다. 퀄컴이 유력 통신 리서치 기관 중 하나인 시그널스리서치그룹(SRG)에 의뢰한 연구 결과 밀리미터파는 6㎓ 이하 주파수 대역 대비 약 47%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송 속도(Data rate)는 주파수 대역보다 대역폭에 더 영향을 받는다. 대역폭(Bandwidth)이 넓을수록 한 번에 더 많은 데이터를 보낼 수 있는데, 고대역폭은 보통 넓은 대역폭이 배정된다. 국내의 경우 3.5㎓ 대역은 대역폭이 280㎒에 불과하고 28㎓ 대역은 대역폭이 2400㎒에 달한다. 

세계 각국의 5G 이동통신 주파수 배정 현황./퀄컴
세계 각국의 5G 이동통신 주파수 배정 현황./퀄컴

 

요원한 밀리미터파 투자

백본단에서야 20Gbps 속도를 구현할 수 있다지만 실제 사용자가 체감하는 속도는 빨라야 3분의1~4분의1이다. 통신 신호가 기지국과 기지국을 오가고 기지국에서 다시 사용자의 모바일 기기로 넘어오기까지 여러 관문을 거치는 탓이다. 

5G 도입 전 업계에서 예측한 속도는 다운로드 기준 1Gbps 이상이었다. 망 구축이 끝나지 않았고 기존 4G까지 혼용해 쓰는 비독립(NSA) 규격이 먼저 상용화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5G NSA는 5G망이 깔린 곳에서는 5G를, 4G망이 깔린 곳에서는 4G를 활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예상치를 충족했지만 국내는 아직이다. 

국내 이동통신 3사는 밀리미터파가 아닌 3.5㎓ 대역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일반소비자(B2C) 시장을 먼저 잡고 난 다음 밀리미터파 망에 투자, 기업간(B2B) 시장을 잡겠다는 이유에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그 속내에는 투자에 대한 부담감이 도사리고 있다.

 

5G 주파수 대역(밀리미터파와 6㎓ 이하) 및 4G LTE의 도달거리 차이./Accon Technology

주파수 신호는 대역이 높아질수록 파장이 짧아진다. 파장이 짧아지면 주파수의 도달거리(Coverage)도 줄어들고 장애물을 회피하는 회절성도 감소한다. 4G LTE와 비슷한 도달거리를 구현하려면 더 많은 기지국을 구축해야한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LTE 망이 이미 완벽히 깔린 국내의 경우 기존 4G LTE 기지국을 5G로 업그레이드하더라도 이전보다 2~3배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며 “스몰셀 등 소형 기지국을 군데군데 구축하겠지만 그래도 투자 부담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통신사 입장에서는 B2B 시장 수요가 확실하지 않은데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밀리미터파 망을 구축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존에는 망 상용화 초기 바짝 설비투자를 했던 이동통신 업계가 이번에는 순차 투자를 하기로 한 것도 이때문이다.

국내 이통사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이동통신 3사 모두 설비투자에 3조원 가까운 금액을 투자했다”며 “올해도 비슷한 규모의 설비투자를 할 계획이지만, 아직 밀리미터파 투자 계획은 누구도 섣불리 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밀리미터파 투자는 해야한다

그렇다고 밀리미터파 투자를 마냥 미룰 수 있는 건 아니다. 

지난 2018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주파수 할당 공고에 따르면 5G 주파수 할당을 받은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내년까지 밀리미터파를 위해 최소 1만5000대의 장비를 구축해야한다. 이때 장비는 빔포밍 및 다중안테나(MIMO)를 지원하는 안테나 통합형 장비를 뜻한다.

이 기준을 맞추려면 올해 하반기부터는 밀리미터파 망을 구축하기 시작해야한다. 하지만 이동통신 사업자 중 아직 밀리미터파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한 곳은 없다. 아직 장비 신뢰성도 떨어지고 밀리미터파를 지원하는 스마트폰도 없어 수요와 공급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하반기부터는 24㎓ 이상 밀리미터파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이 출시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하반기부터 출시한 주요 스마트폰 제품군부터 5G 밀리미터파를 지원한다. 갤럭시S20 시리즈의 경우 내수용은 3.5㎓ 대역만 지원했고, ‘갤럭시S20+’ 및 ‘갤럭시S20 울트라’ 미국 모델은 밀리미터파를 활용하게끔 했다.

삼성전자·시스코·에릭슨 등 주요 장비 업체의 밀리미터파 제품 개발도 지난해 하반기 대부분 끝난 상황이다. 통신사가 장비 업체에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통합 솔루션 형태로 구매했던 종전과는 달리 5G는 각 통신사가 소프트웨어를 외주 개발하거나 직접 개발하기 때문에 최적화에는 보다 시간이 걸린다. 

모바일 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있어야 망 투자를 한다는 통신사의 입장이나 망 투자를 해야 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협력사의 입장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것”이라며 “국내에서는 아직 밀리미터파 망이 필요할 정도로 트래픽이 몰리지 않고 있어 통신사들이 투자를 안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

이 와중에 피해를 입는 건 일반 소비자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상용화 이후 소비자들은 ‘5G가 4G보다 못하다’는 비판을 했다. 망도 완전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고 속도도 기대만 못했기 때문이다. 

가입자 증가세를 이끌어오던 공시지원금도 지난해 10월 이후 줄어들었다. 5G 상용화 초기 이동통신 3사는 LG전자의 ‘V50 씽큐’(일반 소비자가 120만원대)에 최대 70만원의 공시지원금을 줬다.

이에 가파르게 증가하던 5G 가입자 수도 작년 연말을 기점으로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4월 상용화 이후 5G 가입자는 매월 50만 명 이상 증가했지만, 지난 1월엔 전월 대비 29만명 증가한 496만여명에 그쳤다. 심지어 5G에서 LTE로 요금제를 전환하는 가입자도 생겨났다. 

업계는 통신 3사가 하반기부터 밀리미터파 망 구축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연초만 해도 상반기 투자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통신사의 선행투자가 늦어질수록 데이터 품질이 개선될 여지는 줄어든다. 모바일 기기 외 스마트팩토리·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이 5G를 활용한다는 점도 투자를 늦추면 안되는 또다른 이유 중 하나다.

또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투자규모가 워낙 커지다보니 뚜렷한 수요 없이는 결정을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올해 투자가 시작되긴 하겠지만 규모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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