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1 프로젝트 자체는 빛을 보지 못했으나, LTPS 양산 기술 진전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사진은 삼성전자 갤럭시S20 시리즈. /사진=삼성전자
V1 프로젝트 자체는 빛을 보지 못했으나, LTPS 양산 기술 진전에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사진은 삼성전자 갤럭시S20 시리즈. /사진=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에게 V1 라인은 이제 잊혀진 이름이다. V1은 2013년 이전 삼성디스플레이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패널 생산을 위해 구축한 파일럿 라인이다. 

일찌감치 화이트OLED(WOLED) 기술을 택한 LG디스플레이와 달리 삼성디스플레이는 고집스럽게 적녹청(RGB) 방식의 대면적 OLED 양산에 천착했다.

이를 위해 V1에는 스몰마스크스캐닝(SMS)이라는 신기술과, 당시 혁신적이었던 8세대(2200㎜ X 2500㎜)급 저온폴리실리콘(LTPS) 공정이 구비됐다. SMS와 8세대 LTPS 모두 전인미답의 영역이었다. 

이처럼 야심찬 목표를 향한 발걸음이었지만 결과까지 좋지는 못했다. V1은 TV용 OLED 양산 기술을 확보하는데 끝내 실패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17년 방치됐던 V1의 공간을 비우고 5.5세대 OLED 양산 설비를 들여놓았다. TV용 패널 생산 계획을 포기하고 스마트폰용 OLED 패널을 만들게 된 것이다. 

좌초된 프로젝트라고 해서 모든 노력이 허사였을까. 그렇지 않다. V1에서 처음 시도됐던 8세대급 LTPS 기술은 삼성디스플레이의 백플레인(박막트랜지스터, TFT) 기술 수준을 두세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이전까지 LTPS는 낮은 균질성(Uniformity) 탓에 6세대(1500㎜ X 1850㎜)도 쉽지 않다는 게 통설이었다. 

V1에서 8세대급 LTPS 기술을 미리 확보한 삼성디스플레이는 A3에서 6세대 LTPS 라인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LTPS는고화질 LCD와 OLED를 구동하는 데 핵심적으로 필요한 기술이다. 한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V1에서 8세대 LTPS를 연습해본 덕분에 6세대는 비교적 수월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BOE가 중국 정부 보조금을 무기로 OLED에 뭉칫돈을 풀고 있지만, 아직 LTPS 공정 수율과 기술력은 삼성디스플레이에 한참 뒤쳐진다.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안석현 콘텐츠 팀장(기자).

V1은 삼성디스플레이 뿐만 아니라 국내 협력사들에게도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됐다. AP시스템⋅비아트론⋅디이엔티⋅테라세미콘(현 원익테라세미콘)⋅이루자(현 에이치앤이루자)⋅NCB네트웍스(현 HB테크놀러지) 등 당시 V1 라인 구축에 참여했던 기업들은 OLED 분야 메이저 장비업체로 성장했다. 

잊혀졌던 V1의 이름이 다시 떠오른 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잔뜩 움츠린 기업 활동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요 위축이 예상되는 시기, 기업들은 비용 통제를 이유로 군살빼기에 나선다. 

이를 통해 재무 건전성을 높일 수도 있지만 여차하면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V1 사례에서 보듯 완전히 실패한 R&D는 없다. 성공한 프로젝트도, 실패한 프로젝트도 참여자들에게 일정한 유산을 남긴다. 그리고 그 유산이 씨앗이 되어 미래의 캐시카우가 되기도 한다.

당장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고 미래의  V1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 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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